지금으로부터 41년 전, 우리나라 군장병 53명을 태운 군수송기가 제주도 한라산에 추락해 전원 사망한 사건을 혹시 알고 계신가요?
전쟁도 아닐 때에 이런 큰 사건은 뉴스와 신문에 크게 보도될 법 하지만 미디어는 침묵했고 대중은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나의 아들, 나의 남편, 나의 오빠 혹은 동생, 나의 아버지로 불렸던 젊은 20~30대 군장병 53명의 사망 소식은 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1. 사건의 내용
1982년 2월 5일, 오후 3시 15분.
평소에도 바람이 거센 제주도는 당시 한겨울임을 증명하듯 한라산엔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짙은 먹구름이 끼어있었습니다.
C123 군 수송기 9대 중 4번기에 탑승한 특전대원 47명, 공군 장병 6명 총 53명은 서울에서 출발해 제주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착륙 5분 전'이라는 마지막 교신과 함께 눈보라가 치는 한라산 1060m 지점인 개미목 일대에 추락했습니다.
사건의 내용만 보면 기상악화로 인한 추락 사고로 보입니다.
놀랍겠지만 우리는 이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고가 세상에 알려져 국민들이 함께 슬픔을 나누고 사망한 군인들과 유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한 1982년 당시, 이 일은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져선 안됐고 특정 인물의 안위를 보호하기 위해 묵살되어야만 했습니다. 그 특정 인물은 '전두환' 전 대통령입니다.
2. 사건의 배경
1982년 2월 6일, 제주공항이 '국제공항'으로 승격되면서 활주로 확장 준공식에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준공식이기에 준공식 하루 전날인 2월 5일, 당시 군은 특전사 수백 명을 제주도에 2박 3일 일정으로 보내게 됩니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을 경호하기 위한 일정이었습니다. 경호 작전명은 '봉황새 1호 작전'이었습니다.
1982년 2월 5일 당시 제주도는 악천후였습니다. 눈보라가 계속치고 한라산은 앞도 안 보이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다른 비행기를 조종했던 공군 소령도 이렇게 어려운 조종은 처음이었다며 착륙 후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을 정도로 자칫하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Q. 그렇다면 비행하지 않으면 되지 왜 무리하게 비행을 했느냐?
비행 관계자는 2차에 걸쳐 이륙 불가능을 청와대에 건의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러한 상황을 알면서도 이륙 불가능을 반려시켰고, 당시 '박희도' 전 특전사령관도 해당 사실을 알면서도 모든 장병들을 비행기에 탑승시키라는 무리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3. 사건발생 당일과 그 후
1982년 2월 5일.
특전사 47명, 공군 6명 총 53명의 장병들을 태운 C123 군수송기는 눈보라가 치는 한라산 관음사 코스에 추락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장병들은 충성하고 믿었던 나라에게 어떠한 구조와 조치를 받지 못한 채 그대로 눈 속에 파묻혀 버렸습니다.
1982년 2월 6일.
오전 8시 45분, 아직 사고 기체가 발견되지 않았을 때 '훈련 명칭 변경'이라는 메시지가 대대장에게 하달됩니다.
당시 '박희도' 전 특전사령관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경호하기 위해 시행되었던 작전 '봉황새 1호 작전' 명칭을 '동계 특별 훈련'으로 명칭을 변경하도록 지시한 것입니다. '동계 특별 훈련' 즉 간첩을 잡기 위한 '대간첩 침투작전'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특전사였던 이장락 예비역 원사는 대통령 경호작전으로 2박 3일을 간다고 처음 접했는데 갑자기 20일간 훈련을 하고 올라오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합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관련성을 차단하기 위해 '대간첩 침투작전'이라는 명칭으로 둔갑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동계 특별 훈련(대간첩 침투작전)'이 명칭이 현재 장병 사망보고서에 남아있는 육군 공식 작전명입니다.
이 날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참석한 제주국제공항 활주로 준공식이 있던 날이기도 합니다. 청와대와 전두환 전 대통령 그리고 군은 전 날에 있던 사고 소식을 접하지만 준공식 행사는 그대로 진행되었고 어떠한 언급조차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제주신문 사진부 서재철 기자는 준공식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군 수송기 추락'에 대해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게다가 당일 겨울 적설기 훈련을 하던 등반대로부터 '밤새 조명탄이 쏘아 올려졌고, 굉음이 들렸다'라는 말까지 듣게 됩니다.
1982년 2월 7일.
서재철 기자는 사고 현장으로 출동하는 특전사 수색대원들의 눈을 피해 사고현장에 도착했고 처참한 사고현장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미 군인들이 주검들을 많이 수습한 상태였는데 군 수송기 겉면의 위장천이 나무에 걸린 채 100~200m 잘렸고, 불발된 포탄들을 늘어놓은 게 보였다. 후다닥 사진만 찍고 등산객으로 위장해 내려왔던 기억이 있다."
서재철 기자는 사진을 찍어 신문사로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보도할 수 없다는 상부의 지시로 인해 촬영한 흑백필름 6롤 중 5롤만 제출하고 1롤은 몰래 가지고 있다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물러난 후 1989년에 언론에 공개할 수 있었습니다.
서재철 기자가 몰래 촬영을 마치고 한라산을 내려간 후 늦은 오후 즈음, 공군 EOD(폭발물 처리반)이 사고 현장에 도착해 3회에 걸쳐 사고 비행기를 폭파시킵니다. 정확한 사고 조사를 하지도 않은 채 현장을 훼손한 것입니다.
1982년 2월 8일.
사건 발생 나흘 뒤, 군은 유가족에게 어떠한 통보 없이 서울 국립묘지에서 합동 영결식을 진행합니다.
故 이재훈 준위 누나인 이재수씨는 한 인터뷰에서 "어느새 화장까지 해와서 유골함을 앞에 좍 두고 영결식을 했다"며 "그 속에 거기(한라산) 모래라도 갖다 놨으면, 피 한 방울이라도 묻은 거 놨으면 다행인데 그냥 맨 항아리를 묻지 않았을까"라고 갑작스러운 합동 영결식에 기가 막히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1982년 5월 15일.
제주에서 열린 사고 백일제가 있었습니다.
사망한 군 유가족이 참석했고, 한라산 관음사 코스 입구에 충혼탑이 세워집니다.
충혼탑 비문엔 사건을 은폐하려던 '박회도' 당시 특전사령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유가족 누구도 원치 않았고 그런 비문이 세워진다는 이야기도 전해 듣지 못했습니다.
비문 앞면 내용 "네가 죽음으로서 우리가 살고 조국은 지켜지리니 검은 베레는 죽어서 영원히 산다." 비문 뒷면 내용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젊은 나이에 생명을 바친 육군 특전부대 검은 베레 장병 47명과 공군 장병 6명의 거룩한 희생과 충혼을 기리고자 이 비를 세웠다. 대침투 작전 훈련 중 1982년 2월 5일..." * 해당 훈련명 정정은 유가족의 오랜 항의 끝에 2015년 '대통령 경호 작전 중'으로 바뀌게 됩니다. |
황당한건 해당 충혼비 제작비용은 장병들의 월급에서 공제됐습니다.
하사 7,000원, 충사 이상 15,000원, 장교 30,000원씩 봉급에서 공제해 충혼비와 원점비를 제작하고 비문엔 '박희도'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1982년 5월 16일.
사고 백일제가 열린 다음 날, 이 전까지 군의 철저한 통제로 사고 현장에 접근하지 못했던 유가족은 군인들을 몰래 따돌리고 처음으로 사고 현장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목격한 건 산산조각 파손된 기체들. 그리고 그 기체들 조각들과 함께 사망한 군인들의 시신이 훼손되어 있었습니다.
뒤따라온 군인들의 완강한 통제가 이뤄졌지만 유가족들이 맨 손으로 땅을 파보니 유골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렇담 1982년 5월 8일 진행됐던 합동 영결식 유골함에 무엇이 담겨 있었던 걸까요.
유가족들은 30년 동안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고단한 한라산 산행을 이어왔다고 합니다. 땅을 파서 산산조각 난 나의 아들, 남편, 혹은 나의 아버지의 뼈와 살을 조심스럽게 모은 후 군부대에 연락하였으나 이를 외면해 유가족들끼리 제주에서 3차 장례식을 거행했습니다.
4. 언제 세상에 알려졌나
1982년 2월 5일 사건이 발생한 후 31년 만인 2013년 8월에 KBS '시사파일 제주'에서 방송을 타게 됩니다. 그리고 2018년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 방송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늦게 알려진 탓에 세상의 관심을 얻지 못한 채 쓸쓸하게 묻혀 갔습니다.
당시 20대였던 故 이재훈 준위.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군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사랑하는 아내, 귀여운 자녀들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평범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현재 한라산 관음사 코스 입구 옆(산악박물관 뒤편)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53명의 장병들을 추모하는 '충혼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관음사 코스 등반 중 탐라계곡-개미등 사이엔 '원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관음사 코스에 들렸을 때 쓸쓸하게 세상을 떠난 우리 장병들을 기억하며 추모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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